토큰 가격이 40% 가까이 떨어지는데 AI 관련 자산은 왜 크게 흔들리지 않을까요. 최근 몇 주 시타델 증권(Citadel Securities)의 글로벌 매크로 전략 노트 'Elastic Expectations'를 읽으며 처음 든 질문이었습니다. 프랭크 플라이트(Frank Flight)가 8월 18일 낸 이 노트는 AI 경제 전체가 결국 하나의 경제 변수, 즉 탄력성(elasticity)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지능이 싸질 때 그만큼 수요가 늘어나는지가 관건이라는 뜻입니다.
젠슨 황이 최근 컴퓨팅을 '투자 가능한 인프라 자산'이라고 표현한 것도 결국 같은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컴퓨팅이 매출을 내고, 넓은 시장을 상대하고, 시간이 갈수록 성능이 좋아지고, 다른 용도로 재배치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모델이 성립하려면 모델과 컴퓨팅, 애플리케이션 계층에서 뽑아낼 수 있는 수익이 오래 지속돼야 합니다. 그 지속성을 가늠하는 열쇠가 바로 탄력성이라는 게 리포트의 출발점입니다.
토큰 값은 떨어지는데 지출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사용량 가중 토큰 가격은 실리콘데이터(Silicon Data) 기준으로 6월 말 이후 40% 하락했습니다. 그런데 램프(Ramp) 데이터로 계산한 상위 1% 기업의 7월 직원당 AI 지출은 전월 대비 약 50% 늘었습니다. 가격이 내려가는데 지출은 더 늘어난 셈입니다. 처음에는 이 숫자가 언뜻 이해가 안 됐는데, 다시 보니 논리는 단순했습니다. 값이 싸지니 더 많이 쓴 겁니다.
7월 상위 1% 기업의 직원당 AI 지출은 전월 대비 약 50% 늘었습니다.(자료: Ramp AI Index, Citadel Securities, 2026년 7월 기준)
GPU 대여 시장도 6월 저점 대비 견조하고, 2분기 하이퍼스케일러 클라우드 매출은 늘어난 컴퓨팅 용량이 빠르게 유료 수요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가격 하락이 생태계 전체의 경제적 가치를 줄이기보다, 소비되는 지능의 양을 늘리는 쪽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만 이게 몇 년 뒤에도 그대로 맞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지금 가동률이 높다는 사실만으로는 몇 년 후의 수급 균형까지 알 수 없습니다. 모델 구조가 어느 순간 불연속적으로 개선되면 같은 지능을 만드는 데 필요한 컴퓨팅 자체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토큰 값과 컴퓨팅 값이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시타델은 지난 6월 초 '토크노믹스' 노트에서 토큰 가격 바스켓의 하락이 AI 복합체에 던지는 도전을 짚은 바 있습니다. 추론(inference, AI 모델이 답을 계산해내는 과정) 비용이 높아 더 저렴한 모델과 효율적인 워크플로로 대체가 일어나는 동안, 시장 가격은 오히려 먼 미래까지 컴퓨팅 희소성이 이어진다고 가정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AI 관련 자산의 약세와 오픈소스 모델 채택 확대는 그 우려를 어느 정도 뒷받침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6월 중순까지 GPU 대여 가격과 토큰 가격이 동시에 떨어지면서, 이게 단순한 효율화가 아니라 최종 수요 자체가 약해지는 신호일 수 있다는 걱정도 함께 커졌습니다. 그 관계가 최근 깨진 것으로 보입니다. 온(Ornn) 기준 GPU 대여 가격은 반등했는데, 토큰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컴퓨팅과 토큰 가격이 갈라지기 시작했다는 뜻이고, 이는 제번스 역설(Jevons Paradox), 즉 지능이 싸질수록 그만큼 사용량이 늘어 컴퓨팅 수요를 오히려 떠받친다는 쪽에 힘을 실어주는 잠정적 증거라고 리포트는 설명합니다. 다만 이 시장은 아직 젊고 파편화돼 있고 금융시장보다 불투명해서, 신호 자체는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는 단서도 달려 있습니다.
H100 GPU 대여 가격은 반등한 반면 토큰 가격 지출 지수는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자료: Ornn, Silicon Data, Bloomberg, Citadel Securities 편집, 2026년 8월 기준)
컴퓨팅은 점점 원자재처럼 거래되고 있습니다
컴퓨팅은 이제 원자재의 성격을 점점 더 닮아가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물리적 용량이 고정돼 있으니, 현물가격이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선물 커브(기간별 가격 구조)에는 향후 희소성과 증설 계획, 컴퓨팅 인프라를 보유하는 데 따른 경제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담깁니다. 7월 중순 기준 H100 현물가는 36개월 기간물 대비 약 13% 높았고, B200은 약 8% 높았습니다. 신형 B200일수록 커브가 완만한 건 기술적 진부화 속도를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H100과 B200 모두 현물가가 기간물보다 높은 백워데이션 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자료: Silicon Data Compute Forward Curve, Citadel Securities 편집, 2026년 8월 기준)
예측시장 칼시(Kalshi)가 최근 새로운 가격 발견 수단을 더했습니다. 이들의 현물 가격 시계열에 따르면 H100 가격은 5월 고점 대비 41% 떨어졌다가 6월 저점 대비 20% 반등해 안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더 눈에 띄는 건 최신 블랙웰 계열 B200 가격입니다. 현재 시간당 6.17달러 선에서 견조하게 유지되며 5월 고점을 웃돌고 있습니다. 최신 세대 컴퓨팅에 대한 수요가 한계선에서 얼마나 단단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읽을 수 있습니다. 토큰 가격이 떨어지고 추론 효율이 좋아지는 와중에도, 실물 컴퓨팅 가격은 여전히 견조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토큰은 다 같은 토큰이 아닙니다
여기서 하나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지능이 싸지고 있다는 주장을 하려면 품질을 보정해야 합니다. 더 똑똑한 모델일수록 토큰 가격이 비싼 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짜 봐야 할 가격은 개별 토큰 값이 아니라, 쓸모 있는 작업 한 단위를 완료하는 데 드는 비용입니다. 오픈소스(공개 가중치) 모델의 역량과 채택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건, 지금 AI가 처리하는 작업 상당수에는 이미 이 정도 성능이면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즉 사용자들이 결과물 품질을 크게 잃지 않으면서 더 싼 모델로 옮겨가고 있다는 겁니다.
실리콘데이터의 최근 분해 분석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전체 토큰 지수의 약세는 대부분 폐쇄형 모델의 가격 하락에서 비롯됐고, 반대로 키미 K3(Kimi K3) 같은 더 유능하고 상대적으로 비싼 오픈소스 모델의 등장은 오픈소스 구간의 평균 가격을 오히려 밀어올렸습니다. 지능이 싸지면서 생태계 전반의 소비는 늘어나는데, 동시에 오픈소스 모델의 역량과 채택 확대는 폐쇄형 프론티어 랩들이 가져갈 수 있는 몫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 두 힘 사이의 긴장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토큰 가격 하락 속도는 매우 가파릅니다.(자료: Silicon Data, Bloomberg, Citadel Securities, 2026년 6월 기준)
숫자로 보면, 지출은 위쪽에서 훨씬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이 리포트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대목은 램프 AI 지수 데이터입니다. 7만 개 이상 기업의 거래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능의 실질 가격이 떨어질 때 지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추적한 자료입니다. 7월 기준 직원당 AI 지출은 상위 1% 기업에서 전월 대비 49%, 상위 10%에서 25%, 중간값 기업에서 9% 늘었습니다. 2023년 10월 이후로 보면 상위 1% 기업의 월간 직원당 지출은 6,542달러 늘어난 반면 중간값 기업은 9.63달러 느는 데 그쳤고, 상위 10%와 중간값의 지출 배율은 27배에서 54배로 두 배가 됐습니다.
이미 AI 도입을 앞서 진행한 기업일수록 가격이 떨어질 때 더 공격적으로 반응하고 있고, 그 격차는 벌어지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보면 이건 좋은 소식이면서 동시에 쏠림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토큰 가격이 이 정도로 급락하는 와중에 이만한 지출 증가가 나온다는 건, 리포트가 말하는 탄력적 수요 반응의 전형적인 패턴에 부합합니다. 단위 비용이 낮아진 만큼 소비가 충분히 늘어 전체 지출액 자체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상위 10% 기업의 7월 직원당 AI 지출도 전월 대비 25% 늘었습니다.(자료: Ramp AI Index, Citadel Securities, 2026년 7월 기준)
실적과 클라우드 매출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시장 전체로 눈을 돌리면 세 가지가 눈에 띕니다. 첫째, 거시적으로 이익 성장세가 유독 강합니다. 2분기 S&P500 주당순이익(EPS) 성장률은 약 33%로, 경기 침체 이후 회복기를 빼면 가장 강한 수준이고, 최소 2000년 이후 가장 가파른 이익 전망 상향 경로를 그리고 있습니다. 둘째, 하이퍼스케일러 클라우드 매출도 고무적입니다. 2026년 2분기 매출은 1,063억 달러로 전년 대비 약 43%, 전분기 대비 약 15% 늘었습니다. 컴퓨팅에 투입된 막대한 자본이 실제로 매출을 내는 수요와 만나고 있다는 강한 신호입니다.
2026년 2분기 S&P500 이익 전망 상향 경로는 최소 2000년 이후 가장 가파른 수준입니다.(자료: Bloomberg, Citadel Securities 편집, 2026년 8월 10일 기준)
하이퍼스케일러 클라우드 매출은 분기마다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자료: Bloomberg, Citadel Securities 편집, 2026년 8월 기준)
그런데 시장은 아직 도취돼 있지 않습니다
셋째, 시타델의 크로스에셋 분해 프레임워크로 보면 매크로 시장은 도취 상태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자산 가격에 담긴 성장 임펄스를 측정하는 PC1 팩터는 현재 +0.84 표준편차, 최근 5년 기준 65번째 백분위 수준입니다. AI가 만드는 긍정적 임펄스는 보통 실질금리 상승과 위험자산 강세를 통해 매크로 자산에 반영되는데, 2분기 이익과 하이퍼스케일러 매출, 7월 AI 지출 가속을 감안하면 이 정도 수치는 오히려 절제된 편입니다.
크로스에셋 성장 가격 반영도는 아직 뚜렷하게 과열된 수준이 아닙니다.(자료: Bloomberg, Citadel Securities 편집, 2026년 8월 기준)
AI를 둘러싼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자산시장 전반에 담긴 기대는 도취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게 리포트의 결론입니다. AI의 거대한 기대치와 빠르게 떨어지는 토큰 가격을 함께 설명하려면 상당히 탄력적인 수요 곡선이 필요한데, 7월 데이터는 그런 곡선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쪽을 가리킨다는 겁니다.
제가 이 노트를 읽고 다시 생각하게 된 것
저는 토큰 가격 급락 소식을 접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AI 인프라 과잉 투자 우려를 먼저 떠올리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리포트를 보면서 가격과 지출을 따로 떼어놓고 볼 필요가 있다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가격이 내려가는 것과 시장이 쪼그라드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다만 이 좋은 신호 자체가 좋은 투자 판단으로 바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상위 1% 기업이 지출을 이끌고 있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그 아래 대다수 기업의 AI 수요는 아직 그만큼 단단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컴퓨팅을 파는 쪽, 즉 GPU와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기업들의 수혜와 폐쇄형 프론티어 모델 기업의 수익성은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릴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이 리포트는 기관 자체 데이터(Ramp, Silicon Data, Ornn, Kalshi)를 여럿 조합해 쓴 잠정적 분석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시타델 증권은 시장조성자로서 이 데이터의 흐름과 직접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참여자이기도 합니다. 리포트 스스로도 '이 시장은 아직 젊고 파편화돼 있다'며 신호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결론이 아니라 가설로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몇 가지 숫자를 계속 따라가 보려 합니다. 토큰 가격과 GPU 대여 가격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지, 램프 데이터에서 중간값 기업의 지출 증가율이 상위 1%를 따라잡기 시작하는지, B200 같은 최신 세대 컴퓨팅의 현물가와 기간물 가격 차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다음 분기 클라우드 매출과 설비투자 가이던스가 이 흐름을 계속 뒷받침하는지입니다. 지능이 싸지는 것 자체는 이제 거의 기정사실이 됐습니다. 남은 질문은 그 절감분이 얼마나 폭넓게, 얼마나 오래 소비 확대로 이어지느냐입니다.
이 글은 시타델 증권(Citadel Securities)의 글로벌 매크로 전략 노트 'Elastic Expectations'(2026년 8월 18일, 저자 Frank Flight)를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원문은 기관 및 전문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자료이며 투자 자문이나 리서치를 의도하지 않습니다. 본 글 역시 투자 판단의 참고용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이나 자산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결정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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