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릿동물학월스트릿동물학전문가는 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옆에 두는 것이다. Feat 어빙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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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옆에 두는 것이다. Feat 어빙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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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 그릴스의 명언]

사막에서 뱀과 전갈을 생체로 뜯어먹는 베어 그릴스의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 분이 쓴 책 "A Survival Guide for Life: How to Achieve Your Goals, Thrive in Adversity, and Grow in Character" 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Experts Should be on Tap, Not on Top"
전문가는 위에 두지 말고 옆에 두어라

즉, 전문가의 말을 맹신하지 말고 참고만 하라는 뜻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사람은 과거의 패턴이 앞으로 발현되리라 생각하는 편의(Bias)가 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본인의 이해관계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하늘의 뜻이라 한다면, 두 번째와 세번째는 인간의 뜻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잘 설명해주는 인물은 바로 세계적인 경제학 거장, 어빙 피셔 (Irving Fisher) 입니다. 경제학도라면 한 번 쯤은 들어봤을, 현대 경제학의 시초라 볼 수 있는 인물입니다.

[어빙 피셔의 생애와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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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피셔는 뉴욕주 소거티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예일대학교 입학 이후 아버지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가족의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과외로 학업을 이어나갔으며, 예일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습니다. 그리고 1891년 예일대학교에서 경제학 분야 최초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그의 박사논문 『가치와 가격 이론의 수학적 연구(Mathematical Investigations in the Theory of Value and Prices, 1892)』는 미국 수리 경제학의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 번외로 저자는 대학교에서 수리경제학을 공부하며 못난 머리를 자책하곤 했습니다.
이후 본인 또한 결핵으로 고통받았으나, 3년간 요양으로 결핵을 치유한 뒤 채식주의/운동/금연을 강조하는 건강 운동가로 활약하였으며 1915년에 "어떻게 살 것인가(How To Live)"라는 책을 공저하였는데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물론 건강전도사로 살았다고 그의 학문 업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그의 이름이 붙은 피셔 방정식인데, 명목 이자율 (Norminal Interest Rate) 은 실질 이자율 (Real Interest Rate)과 기대 인플레이션 (Expected Inflation Rate) 의 합이라는 이론은 추후 거시 경제학의 이자율 이론의 기초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 외 화폐의 수량이 물가를 결정한다는 화폐수량설을 확립하고 물가지수 구성 제안, 필립스 곡선의 기초가 되는 '실업-물가'의 관계 등 현대 거시 경제학의 기초를 닦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학문적 업적은 셀 수 없었습니다. 즉, 당시 경제에 대한 그의 전문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을 것 입니다.

[대공황과 어빙 피셔의 흑역사 시작]

1919년 1차세계대전 직후 인플레이션으로 불경기가 있었으나, 경기 회복 후 전 세계는 호황을 맞게 됩니다. 미국은 "Roaring 20s(포효하는 1920년대)"라 부를 만큼 큰 경제적 호황을 맞았습니다. 전쟁에서 쓰였던 기술들이 상업화 되고, 라디오가 전 지역으로 보급됨에 따라 기술과 부의 풍요를 누렸습니다. 주식 시장은 큰 호황을 맞았고, 몇 달전 전닉 레버리지가 광풍을 휩쓴 것 처럼, 미국에서도 Investment Trust가 난립하여 레버리지를 통해 시장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다만, 유동성으로 인해 시장의 버블이 지속되면 언젠가 터지는 법. 1929년에도 비슷한 현상이 감지됩니다.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며 주식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시장은 조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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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0월 15일, 다우존스 지수가 고점 대비 14% 빠졌을 당시, 어빙 피셔는 파크 애비뉴에 있는 한 저녁 식사 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가 지수는 영원한 높은 고원에 다다른 것 같다.” (Stock prices had reached “what looks like a permanently high plateau.) 즉, 여기서 더 빠지진 않을 거고 다시 반등할 것이다.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그 이후 주가가 한 달 동안 약 40% 하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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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는 이 전에도 수많은 공황이 있었으나, 이 정도로 증시가 증발한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어빙 피셔 역시 과거 데이터를 살펴봤을 것이고, 본인 역시 경제학에 대한 전문성 뿐만 아닌 호황 시기 특허를 통해 부를 쌓고 한 회사의 이사로 근무했을 만큼 실전 경험이 탄탄한 경제학자라 자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가 꼭 미래를 답습하리란 법은 없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변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 생기기도 하며, 또는 기존의 변수의 성질이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 또 변수의 관계는 정적이 아닌 역학적입니다. 과거에 연결되지 않았던 변수가 새로 연결되어 현상을 창출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됬든 그는 1929년 주식 폭락으로 인해 쌓아온 재산을 모두 잃었으며, 예일 재단이 주선해준 집으로 이사 해야 했습니다.

[1933년, 인플레이션을 주창하다]

미국은 1929년 이후 디플레이션의 수렁으로 빠졌으며, 주식 시장 폭락은 은행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불경기의 시작은 금리 인하 등 무분별한 통화 확장 정책이었다고 진단한 당시 경제학자들은 가격 안정을 최우선을 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피셔 등은 물가 수준을 1929년 이후로 올려놓은 이후에 가격 안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그가 갚아야 하는 부채가 더 늘었기 때문이며, 보유 주식이 회복되길 바랬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그의 바람" 대로 루즈벨트 정부는 뉴딜 등의 적극적인 정부개입을 펼치며 지수는 저점대비 400% 이상 상승했으나, 고점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며 미국 경제는 2차 세계 대전까지 대공황의 수렁에서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전문가도 인간이다. 그것이 그를 옆에 둬야 하는 이유.]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다 하더라도 인간은 인간일 뿐입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인간이 아는 바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이해관계를 달리 할 수 있는게 인간입니다. 특히,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는 투자자는 이를 반드시 주지해야 합니다. 전문가의 말을 믿고 투자하는 것이 아닌, 그의 발언의 저의를 읽고 참조하여 본인의 뷰(View)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살아남는게 이 바닥 아닌가 생각하며 글을 마칩니다.

본 콘텐츠는 일반적인 정보 제공 및 교육 목적이며 투자 자문, 투자 권유, 종목 추천이 아닙니다. 최종 판단과 책임은 이용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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